올해만 7.4조..한미약품 돈방석 올라앉게 한 협상방정식
'살 빠지는 당뇨약' 꽂힌 얀센에 비슷한 기능에 투여횟수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 공급 당뇨병 치료제 명가인 사노피에도 없으면 곤란한 제품라인 안겨..비결은 '랩스커버리'뉴스1 이영성 기자 입력 2015.11.10. 05:10 수정 2015.11.10. 07:25 출처 : http://media.daum.net/economic/all/newsview?newsid=20151110051020636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한미약품이 연일 다국적제약사들과 조 단위의 기술수출 잭팟을 터트린데는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게임판을 짠 비즈니스 협상전략이 숨어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러 곳에서 응용이 가능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아쉽거나 위협으로 느낄 만한 부분을 콕집어 던져줌으로써 처음부터 '을'의 위치가 아닌 '갑'의 위치에서 협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국적제약사들 입장에서 보면 한미약품의 이같은 전략을 알면서도 그 신약물질이 경쟁사로 흘러갈 경우 자사의 시장지배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 한미약품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사노피의 경우 당뇨병 치료제가 주력제품이고 얀센은 2013년부터 당뇨병 치료제를 주력제품으로 키우고 있다.
◇살 빠지는 당뇨약으로 재미 본 얀센, 한미약품 신약물질에 꽂히다
한미약품은 다국적제약사 얀센과 지속형 당뇨 및 비만 신약 ‘HM12525A’에 대한 판권이전 계약으로 상품화돼 출시되기 전만 총 9억1500만달러(한화 약 1조587억원)를 받게 된다. 계약금 1억500만달러(한화 약 1215억원)와 단계별 임상개발 및 허가, 상업화 등에 따른 마일스톤(milestone) 8억1000만 달러(한화 약 9372억원)를 합친 것이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두 자릿수 퍼센트의 판매 로열티를 별도로 받는다.
올해만 4번째 빅딜로 직전의 4조8000억원 짜리 계약을 포함, 3건을 합치면 올해 블록버스터 계약만 7조4000억원이다.
국내에서 타이레놀로 유명한 거대 제약사 얀센이 한미약품에 이끌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물질이 '살빼는 당뇨약'이라는 데 있다. 얀센은 1~2년전부터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 진출, 시장확보 전략을 공격적으로 펼쳐왔다.
이 부분에서 이미 얀센은 선행 의약품으로 위력을 경험했다. 얀센은 일본계 제약사인 미쯔비시로부터 SGLT-2 억제 계열 당뇨치료 신약인 ‘인보카나’에 대한 판권을 인수, 임상과 허가를 거쳐 현재 시판중이다.
바로 인보카나가 속한 SGLT-2 억제 계열 약제가 ‘살 빠지는 당뇨약’이다.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부작용으로 살이 빠진다는 점이 발견된 것인데 비만자들에서 당뇨병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오히려 시너지가 생겨 북미와 유럽 등에서 처방 특수를 누리고 있다. 다만 국내의 경우에는 한국얀센이 약제 급여를 적용받는 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아 인보카나의 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얀센이 판권을 인수한 한미약품의 HM12525A도 비만과 당뇨 동시 치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HM12525A의 주성분은 인슐린 분비 및 식욕억제를 돕는 GLP-1 효소와 에너지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이다. HM12525A는 이 두 성분을 동시에 넣어 이중 치료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신약 물질이다.
더욱이 이 물질에는 한미약품의 특허기술 ‘랩스커버리(Lapscovery)'가 적용돼 환자가 매일 맞아야하는 주사를 주1회로 줄일 수 있도록 돼 있다. 살빼는 당뇨약에 꽂힌 얀센이 비슷한 기능에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을 크게 개선시킨 한미약품의 HM12525A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장 전략 측면에서 얀센이 한미약품에 큰 돈을 주고서라도 판권을 인수할 유인이 더 있다. 얀센이 가진 SGLT-2 억제 계열 약물에서 베링거인겔하임이나 아스트라제네카 등으로부터 경쟁약이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의 HM12525A가 경쟁사로 넘어갈 경우 공들여 키워온 자사 제품의 입지가 흔들릴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인슐린 제제 명가, 사노피도 한미약품 랩스커버리 기술에 반하다
사노피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한미약품의 당뇨병 치료 신약물질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사노피는 인슐린제제에서 세계적 명가로 꼽힌다.
한미약품은 지난 5일 사노피와 ‘GLP-1 계열의 에페글레나타이드’, ‘지속형 인슐린’ 그리고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지속형 인슐린을 합친 ‘인슐린 콤보’ 3개 물질에 대해 4조800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사노피도 사실 비슷한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다. ‘GLP-1 계열의 릭수미아’와 인슐린제제 ‘란투스’ 그리고 이 둘을 합친 콤보인 ‘릭실란’이 있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신약물질들은 모두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해 약효 지속력을 키웠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우 최대 월 1회만 맞으면 되고 나머지 두 제품은 주 1회다. 사노피의 제품들은 모두 매일 맞아야 하기 때문에 환자 편의성에 있어 차이가 크다.
사노피로서는 한미약품 신약물질들이 욕심나지 않을 수 없는 파이프라인인 것이다. 또 얀센과 마찬가지로 투여면에서 매력이 매우 높은 한미약품 신약물질이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자사제품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자사 제품군 보호와 시장 입지 강화를 위해 기꺼이 4조8000억원의 비용을 지불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제품 구색에서 사노피는 인슐린 콤보에 특히 꽂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의 꽃놀이패 '랩스커버리'
랩스커버리는 약효성분에 '랩스캐리어'라는 단백질을 장착시켜 체내 상피세포에 흡수·분해되거나 신장에 의해 여과되는 약물량을 줄여 약물이 체내에 오래남아 있게 하는 기술이다. 그런만큼 약효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투여횟수와 투여량도 줄일 수 있다. 투여량이 주는 만큼 약값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랩스단백질은 체내 부작용이 없고 약효를 내는 성분 단백질 특성과 상관없이 결합이 가능하다. 이번 사노피에 기술 이전한 당뇨병 치료 신약과 얀센과 계약한 당뇨·비만 신약 외에 다른 질환 신약 개발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인 셈이다.
사업전략 면에서는 한미약품으로서는 플랫폼 기술을 쥐고 이곳 저곳에 응용해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신약물질만 개발해 공급하면 되는 그야말로 꽃놀이패다.
한미약품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신약물질은 기술이전 된 것을 포함해 바이오신약이 6건, 차세대 표적항암제 중심의 합성신약 8건, 개량복합신약 11건으로 총 25개이다.
앞으로 얀센은 HM12525A에 대한 글로벌 임상2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임상 조건에 따라 비만과 당뇨를 동시 치료하는 약제로 개발할 수도 있고 별도로 비만이나 당뇨병 단일치료제로도 개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이 자금력이 아직 부족하다 보니 임상 중간단계에서 다국적 제약사에 라이선스 아웃을 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면서도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성과가 이어지면 우리나라 제약사가 직접 글로벌 임상3상을 주도해 세계적인 제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도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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